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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꿈이었던 청년 이학영의 집안은 매우 가난하여 그의 어머니는 광주 두암동 일대의 과일밭에서 날품 일을 하면서 그를 대학(전남대 국문학과)에 보냈다. 자신을 가르치기 위해 힘들게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이학영은 교사가 되어 부모님 잘 모시고 가족들과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겠다는 평범한 꿈을 키웠다. 하지만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그의 소박한 꿈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1974년 4월 3일 긴급조치 4호를 발동한 박정희 독재정권은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라는 조직사건을 조작하여 전국의 대학생들을 무차별로 구속했다. 당시 전남대학교 문리대 학생회장이었던 이학영은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심한 구타와, 물고문을 당해야만 했다. 조작된 죄목으로 1년 가까이 복역했던 이학영은 1975년 2월 15일, 2·15 조치로 석방되었다. 민주화 운동의 시련 민청학련 사건으로 시국사범이 된 이학영은 일용직 노동에서도, 공장일에서도 끊임없이 그를 사찰하던 정보기관원들에 의해 쫓겨났다. 1970년대는 절대권력의 부도덕이 극성을 떨치고 권력과 재벌이 유착하여 국민의 재산을 수탈하던 시기였다. 청년 이학영은 조국의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박정희 군부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것밖에 없음을 자각하고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후 이학영은 민주화 운동의 자금을 마련하고, 정경유착으로 부도덕한 재벌들의 행태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일벌백계의 상징으로 '모(某)건설 회장' 집에 침입하기로 모의한다. 하지만 어설픈 운동가들은 계획에 성공하지 못했고, 결국 이학영만 붙잡힌다. 연행된 이학영은 모진 육신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먹고 살기 위해 담을 넘었을 뿐이라고 주장할 뿐, 함께 일을 도모한 사람들과 그가 속한 단체에 대해서는 끝까지 함구하며 모진 고문을 버텨냈다. 박정희 정권의 군홧발은 그의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몸을 시퍼렇게 얽던 몽둥이 자국은 세월이 지나면서 지워졌지만 폐가 손상돼 겨울이면 지금도 천식이 도진다. 결국 이학영은 1979년 10월 초 남민전이라는 조직사건의 관련자로 몰려 다시 재판을 받고 고 김남주 시인, 이재오 의원 등과 함께 옥고를 치렀다. 재판 최후진술에서 이학영은 자신의 삶, 가족, 나아가 민족이 처한 처참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강도가 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했다. 그의 진심이 담긴 애절한 진술에 방청석은 흐느낌으로 가득했으며 재판장도 감동하여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시민사회 운동으로 5년간의 감옥생활 후 사회로 돌아 온 이학영은 대학에 복학했고, 졸업을 앞두고 순천YMCA에 입회하여 어린이, 청소년, 성인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의 시민들과 함께 사회교육, 지역사회운동을 전개한다.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이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유보한다는 특별담화문을 발표하자 군사독재 연장에 대한 분노로 전국이 들끓었다. 그리고 그 해 6월 10일, 전국적으로 반독재, 민주화 시위가 발생한다. 순천YMCA 간사로 활동하던 이학영은 6·10 민주항쟁의 중요함을 시민들에게 적극 알리고 동참을 권유한다. 당시 이학영이 어린 아들을 안고 시위에 참여한 일화는 유명하다. 6·10 민주항쟁 중 순천시청이 학생과 시민들에게 점거되는 상황이 발생하자 이학영은 시위대에게 시청 유리창 등의 기물을 파손하면 안 된다고 간곡히 호소했다. 그 덕분에 순천시청은 파손 하나 없었으며 청년과 시민들은 몇 시간 후 자진 철수하였다. 순천의 6·10항쟁 운동은 <여순사건> 이후 청년학생을 포함한 범시민이 동참한 최초의 대중 집회였다. 이를 계기로 순천지역에서는 부조리한 시국현안에 대한 시민들의 시위참여문화가 형성되었다. 시민을 위한 정치에서 시민을 섬기는 정치로 이학영은 순천YMCA 사무총장을 지낸 후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공동대표 등 대한민국 시민사회의 중심에서 열심히 활동했고, 시민운동의 맏형으로 불리며 시민운동을 이끌어왔다. 이제 그가 30여 년 간 몸담았던 시민사회운동 현장을 넘어 정치의 길로 들어선다. 자신보다 남을 위해 살아왔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 도와달라며 아쉬운 소리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순하디 순한 사람 이학영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섰다. 이학영은 대의정치와 시민참여정치가 함께 하는 새로운 시민정치로의 변화를 위해 누군가 길을 터야한다고 결단하고 '시민정치의 산파역'을 자임하며 정치에 발을 디뎠다. 새로운 영역에 들어온 만큼 생각도 굳건히 먹는다. 부드러운 정치와 인간다운 정치, 거짓과 질시가 없는 정치, 많은 시민세력이 정치개혁을 위해 새롭게 참여하는 정치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다는 각오다. 살아 온 삶을 보면 그 사람의 내일이 보인다. 이학영은 30년 넘게 우리사회 시민이 존중 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해 왔다. 이학영은 우리시대가 지켜내고 키워내야 할 사회적 자산이다. 항상 웃는 얼굴, 항상 사람을 섬기는 자세로 시민이 참된 주인이 되는 정치를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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